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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스크랩] 장닭 잡던 아버지의 야만성에, 나는 놀랐다(송희복)

꼬맹이소나무 2016. 8. 17. 07:36

  장닭 잡던 아버지의 야만성에, 나는 놀랐다 

  ―이상의 시와 함께 읽는 이승하의 시

 

  송희복

 

  1. 첫 번째 시퀀스:까마귀의 눈으로 조감하는 세상

 

  지금으로부터 19년 전의 일이었다. 문예계간지 『문학정신』 1995년 가을호에 ‘작가들’ 특집에 이상(李箱)이 정해졌다. 필진은 정신과 의사 김종주, 한양대 교수 이승훈, 시인 이승하였다. 이승하는 「언어에 대한 저항정신과 풍자」라는 제목의 글에서 자신에게 끼친 이상의 영향에 관한 문학적 담론으로 얘깃거리를 이끌어냈다. 그는 이상이 전통과 언어에 대해 반항했다는 점을 높이 샀다. 또한 그는 이상의 시를 가리켜 풍자시의 선구적인 문학 전범으로 여겼다. 이상이 풍자한 것은 주로 현대인과 문명 사회였고, 부조리한 인간 조건과 불합리한 물질적 강제력을 마음껏 비웃었다고 한다. 풍자의 스펙트럼 안에 클라크가 말한 일곱 가지의 요소가 있는데, 이를테면 기지ㆍ조롱ㆍ아이러니ㆍ비꼬기ㆍ자조ㆍ냉소ㆍ욕설이 여기에 해당한다. 이승하에 따르면 이상의 시에는 이 모든 것들이 거의 다 포함되어 있다는 것이다. 이승하의 시가 이상의 영향권으로부터 벗어날 수 없었다면, 이상이란 모범적인 텍스트를 염두에 두고 그의 시를 읽어보는 것도 좋을 것이라고 생각된다.

 

어디서 우 울음소리가 드 들려

겨 겨 견딜 수가 없어 나 난 말야

토 토하고 싶어 울음소리가

끄 끊어질 듯 끄 끊이지 않고

드 들려와

 

야 양팔을 벌리고 과 과녁에 서 있는

그런 부 불안의 생김새들

우우 그런 치욕적인

과 광경을 보면 소 소름 끼쳐

다 다 달아나고 싶어

 

도 동화(同化)야 도 동화(童話)의 세계야

저놈의 소리 저 우 울음소리

세 세기말의 배후에서 무 무수한 학살극

바 발이 잘 떼어지지 않아 그런데

자 자백하라구? 내가 무얼 어쨌기에

 

소 소름 끼쳐 터 텅 빈 도시

아니 우 웃는 소리야 끝내는

끝내는 미 미쳐버릴지 모른다

우우 보트 피플이여 텅 빈 세계여

나는 부 부 부인할 것이다

 

―「화가 뭉크와 함께」 전문

 

  이 시는 이승하의 공식적인 등단작으로 1984년 중앙일보 신춘문예 시 부문 당선작이다. 그는 이 시를 통해 ‘눌변의 어조를 창조’(김준오)하는 데 기여했다. 그는 감당하기 힘든 집안 문제로 고등학교를 두 달 만에 작파하고 독학으로 공부하는 과정에서 시쳇말로 은둔형 외톨이처럼 살았다. 그러다 보니 말 상대가 없어서 젊었을 때 심하게 말을 더듬었다고 한다. 그 젊은 날의 육성이 이 시에 온전히 전해지고 있다.

 

  화가 뭉크는 잘 알다시피 에드바르 뭉크(1863~1944)를 가리킨다. 이 화가의 작품인 「절규」는 현대의 명화로 손꼽히는데 갑자기 핏빛으로 물든 하늘, 슬픔의 숨결이 전해오는 듯한 동요하는 이미지를 특징으로 한다. 뭉크는 어릴 때 겪은 가족의 죽음으로 인해 평생토록 불안과 공포 속에서 살아갔다. 그에게는 자신을 항상 따라다니던 옥죄는 죽음에 대한 공포가 있었다.

 

  이승하의 시편 「화가 뭉크와 함께」에도 화자의 불안과 공포, 죽음에 대한 강한 관념이 혼재되어 있다. 이 시는 죽음의 연대라고 할 수 있는 1980년대를 투영한 시대적인 벽화의 부호들로 가득 차 있다. 광주민주화운동의 살육 현장, 세계적인 뉴스거리였던 베트남 난민의 집단 탈출 사태를 상징하는 보트 피플, 무고한 사람에게 허위자백을 강요하는 폭력적인 국가기관 등의 경우에서 말이다. 그 시절에는 자아와 세계 사이에는 메울 수 없는 간극의 불화와 반목이 있었다.

 

  나는 이 시가 이상의 연작시 오감도 중에서 시제일호(詩第一號)와 비슷이 반응하고 있다고 본다. “13인의아해(兒孩)가도로로질주(疾走)하오.”로부터 시작하여 “13인의아해(兒孩)가도로로질주(疾走)하지아니하여도좋소.”로 끝맺음하는 그 유명한 시가 있지 않은가? 두 편의 시는 모두 현대인의 강박적인 불안을 노래한 시다. 시적인 표현 기법이 아이러니인 것도 공통적이다. 시편 「화가 뭉크와 함께」를 읽으면, 고통에 차 있고 불길하면서 또한 음울한 세상을 까마귀의 눈으로 내려다보는 느낌을 결코 지울 수가 없다.

 

  2. 두 번째 시퀀스:부성(父性)의 아이콘에 도전하다

 

  시인 이승하는 아버지와 정신적인 소통을 나누지 못했다. 아버지의 몸은 건장했고, 경찰공무원이었다. 시인은 어머니를 닮아서인지 왜소했다. 어릴 때 아버지는 늘 폭압적인 이미지를 보여주었고, 늘 어머니와 다투던 기억이 트라우마처럼 남아 있음을 몇 편의 시를 통해 말해주었다. 나는 시인 이승하와 4반세기 동안 서로 아는 사이였기 때문에 가족 관계에 얽힌 얘깃거리에 관해 누구보다도 잘 알고 있다. 다음에 인용된 시에서 아버지는 화자인 나와 관계를 맺는 세계와 나 사이에 구조화된 폭력이 개입된 세계로 은유되고 있다.

 

1

 

김천 장날 장닭을 사오신 아버지

어머니는 마당 한켠 솥에다

물을 팔팔 끓이기 시작했고요

아버지는 꼬끼요― 꼬꼬댁꼬꼬댁

난리치는 닭의 몸통을 잡고

도마 위에 눕혔습니다 이미 날을 갈아둔 칼

내려치자 피가 마당에 팍― 튀었습니다


누이와 저는 겁에 질려 떨면서

빨리 저 닭이 솥에 들어가

식탁에 오르기만을 기다렸습니다


칼을 두 번 세 번 내려치자

도마를 시뻘겋게 물들이며 머리통이

마당에 굴렀습니다 깃털이 날리고

닭은 날개를 더욱 세게 푸드덕거리고

아 어쩜 저린 일이!


목 잘린 닭 몸퉁이 아버지 손에서 용케 빠져나와

비실비실 달아나다

마당 한 구석에서 퍽 꼬꾸라졌을 때

누이는 으앙― 울음을 터뜨리고

아버지가 쫓아가 닭다리를 잡고 오시는데

마당에 피가 뚝! 뚝! 떨어지는 것이었습니다.


2


저것들이 도대체 몇 마리입니까

텔레비전 화면을 가득 메운

닭 닭 닭 천지 닭의 지옥

멀쩡하게 살아 있는 저 많은 닭들이

치킨 집에 간 사람들의 입이 아닌

커다란 구덩이 속으로 들어가고 있습니다


사람을 위해 인위적으로 태어난 것들

죽어야 제 값을 하는 것들 위로

흙을 좌르륵 쏟아 붓는 포크레인

대량사육을 위해 한꺼번에 태어났다

한꺼번에 죽어가는군요

꼬꼬댁 꼬꼬댁 울고불고 난리를 치며

푸드득푸드득 하늘 향해 날개를 치며

닭 닭 닭들이 산 채로……

도대체 저것들이 몇 마리입니까

  ―닭을 잡던 날」 전문

 

  어릴 때 기억 속에 깊은 상처가 있음을 암시하고 있는 시다. 아버지의 야만성에 화자는 그저 놀랄 뿐이었고, 어린 누이는 으앙 하면서 울음을 터뜨렸다. 시인의 아버지는 박정희의 맹목적인 추종자였다. 그에게 아버지는 권위이면서 또한 권력이었다. 좋은 의미든 나쁜 의미든 아버지가 한때 나에게 우상이었기 때문에, 내 삶의 역장(力場)에 미치는 바가 크다. 이승하는 아버지에게서 매우 다단하고도 복잡한 반응을 얻었다. 그의 문학이 이런 이유 때문에 우상 파괴의 언어유희를 보여준 이상으로부터 자연스레 정신적인 자양분을 얻었으리라고 충분히 짐작된다. 그에게 있어서 아버지는 다름 아니라 강박적인 것으로 다가오는 그런 존재였던 것이다.

 

  한편 이상 시에 있어서의 부성상(父性像)에 관한 것은 어떠했던가. 그는 일찍이 구한말 관리를 지냈던 백부에게 입양되었다. 친부는 매우 가난했고, 그 어머니는 일자무식의 여인이었다. 그는 생활의 여유가 있었던 백부에게 입양되었기 때문에 엘리트 교육을 받을 수 있었던 것이다. 그의 백부가 세상을 뜨자 그는 다시 친부모에게로 돌아가게 되었는데 경제적인 부양 문제로 인해 갈등이 많았던 것으로 알려져 있다. 아무튼 이상의 아버지관은 백부이건 친부이건 매우 부정적이었다. 다음에 인용될 시에는 무의식적인 증오감이 여과 없이 반영되어 있다.

 

  크리스트에酷似한한襤褸한사나이가있으니이이는그의終生과殞命까지도내게떠맡기려는사나운마음씨다. 내時時刻刻에늘어서서한時代나訥辯인트집으로나를威脅한다. 恩愛나의着實한經營이늘새파랗게질린다. 나는이육중한크리스트의別身을暗殺하지않고는내門閥과내陰謀를掠奪당할까참걱정이다.

 

  ―이상의 「肉親」 부분

 

  이상의 「육친」은 오이디푸스적인 원형(原型)과 신화소(神話素)를 지닌 작품이다. 그만큼 정신분석학적인 논의가 향후 풍성할 것이란 예감이 드는 시편이다. 크리스트와 아버지는 매우 닮았다. 남루함이 개입되어 있어서 더 그런지도 모르겠다. 백부의 죽음 이후에 친부를 부양해야 하는 갈등이 이 시에 반영되어 있다. 아비로서 아들에게 은혜와 사랑을 주장할 때마다, 그는 파랗게 질린다고 했다. 육중한 크리스트의 별신은 곧 아버지이며, 이 아버지의 위협을 암살(묵살)하려고 해도 잘 되지 않는다고 하소연하고 있다. 이상은 부성의 아이콘에 관한 한 매우 강박적인 반응을 보이고 있다.

 

  시인 이승하는 2000년대에 들어와서 폭력과 광기에 대한 존재와 세계의 불안을 다소 누그러뜨린다. 타인과의 유대와 타인에 대한 사랑, 용서와 화해를 꿈꾸는 서정의 회귀로 길을 찾고 있었다. 자연히 아버지와의 화해도 조금씩 이루어져 갔다. 시집 『뼈아픈 별을 찾아서』(2001)에서는 아버지를 향해 당신을 용서하겠다고 말하기도 했다. 그 대표적인 시편은 아버지를 자신이 병간호하는 내용으로 전개되는 「아버지의 성기를 노래하고 싶다」이다.

 

내 목숨이 여기서 출발하였으니

이제는 아버지의 성기를 노래하고 싶다

활화산의 힘으로 발기하여

세상에 씨를 뿌린 뭇 남성의 상징을

이제는 내가 노래해야겠다

우리는 모두 이것의 힘으로부터 왔다

지금은 주름져 축 늘어져 있는

아무런 반응이 없는 하나의 물건

 

나는 물수건을 다시 짜 와서

아버지의 마른 하체를 닦기 시작한다

 

―「아버지의 성기를 노래하고 싶다」 부분

 

  이승하 시인은 이 시집의 머리말에 “아버님, 제 시집 읽으시고 아주 환하게 웃으시리라 믿습니다. 이 시집을 아버님께 바칩니다.”라고 썼다. 아버지가 원망의 대상이 아니라 연민의 대상으로 바뀌어 있음을 알 수 있다.

 

  3. 세 번째 시퀀스:풍자, 혹은 합리와 본능의 세계

 

  이상의 시편 「금제」는 매우 흥미롭게 읽히는 시다. 그의 풍자 정신이 잘 드러나고 있기 때문이다. 개들이 실험동물로 바쳐지는데, 이 중에서도 비타민 E를 지닌 개, 즉 성욕이 왕성한 개는 성욕이 왕성하다는 질투감의 이유 때문에 의학박사에게 흠씬 얻어맞는다. 이 본능의 세계와 대비되는 세계는 의과대학으로 상징화된 합리의 세계이다. 나는 개를 살해하는 걸 필사적으로 금제한다. 즉, 하지 말게 말린다. 그러나 논문에 출석한 개의 촉루(髑髏), 즉 해골은 이름도 없이 존재한다. 이승훈의 해설에 따르면, 의과대학이 표상하는 합리적 세계 속에서 개로 표상되는 본능의 세계가 죽어가는 모습을 노래하고 있는 시다.

 

  내가치던개(狗)는튼튼하대서모조리實驗動物로供養되고그中에서비타민E를지닌개(狗)는學究의未及과生物다운嫉妬로해서博士에게흠씬얻어맞는다. 하고싶은말을개짖듯배앝아놓던歲月은숨었다. 醫科大學허전한마당에우뚝서서나는必死로禁制를앓는(患)다. 論文에出席한억울한髑髏에는千古에氏名이없는法이다.

 

  ―이상의 「禁制」 전문

 

  이 시는 풍자시로서는 대단한 것이 아닐 수 없다. 좀 과격한 모더니스트 시인답게 지적인 요소가 현란하다. 사실 이보다는 생명의 소중함을 행간에 깔아놓은 숨은 의도가 한결 돋보인다고 하겠다. 이승하에게도 이러한 유의 시들은 적지 않다. 본능의 세계에 놓인 생명 존중의 의식과 관련한 시 가운데 다음과 같은 시도 감동적으로 읽힌다. 물론 이상의 풍자시처럼 지적인 현란함으로 읽히는 시는 아니다. 물기 촉촉한 서정성은 메마르고 황폐한 세상에 밝은 빛이 되고 있는 것이다.

 

산 개미가 죽은 개미를 물고

어디론가 가는 광경을

어린 시절 본 적이 있다

 

산 군인이 죽은 군인을 업고

비틀대며 가는 장면을

영화관에서 본 적이 있다

 

상처입은 자는 알 것이다

상처입은 타인한테 다가가

그 상처 닦아주고 싸매주고

 

그리고는 벌떡 일어나

상처입힌 자들을 향해

외치고 싶어지는 이유를

 

상한 개가 상한 개한테 다가가

상처 핥아주는 모습을

나는 오늘 개시장을 지나다가 보았다

 

―「상처」 전문

 

  이 시는 『생명에서 물건으로』(문학과지성사, 1995)에 실려 있다. 기억의 조각조각을 마치 퍼즐을 맞추듯이 맞추어 하나의 통일성 있는 의미의 한 덩어리를 이룩하고 있다. 산 개미 이야기와, 잔명(殘命)의 군인 이야기를 어두운 기억의 저편으로부터 불러일으켜 가장 가까운 기억인 오늘의 이야기, 즉 개시장에서 죽음을 기다리고 있는 상한 개들의 이야기까지 꼬리를 물고 연쇄반응을 일으킨다. 세계의 구조화된 폭력성에 대한 날카로운 풍자이다. 젊었을 때 모더니즘의 영향을 크게 입은 이승하의, 문명을 비판하는 날카로운 눈이 사뭇 예리하다. 요컨대, 이승하의 시는 한동안 자아와 세계, 그 구조화된 폭력의 관계성을 통한 기호들의 그물망으로 형성되어 있었다고 해도 결코 지나친 말이 아닐 터이다.

 

  올해로 등단 30주년을 맞이하는 시인이 앞으로 또 어떤 세계로 나아갈지, 기대감을 갖고 지켜보는 독자가 나 하나만은 아닐 것이다.

 

  송희복|문학평론가, 진주교대 교수

  1990년 조선일보 신춘문예 문학평론 당선

 『해방기 문학비평 연구』 외 다수

 

 

 

출처 : 이승하 : 화가 뭉크와 함께 이후
글쓴이 : 이승하 원글보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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